[신문으로 공부합시다]경쟁하지 않을 권리

서현숙 강원도교육청 파견교사

2019-08-27

비경쟁 독서토론 참석한 도내 고교생들
평가로 왜곡된 공부의 의미 안타까워해


“나, 국어 90점 받았어!”

딸아이가 중학교 시절 현관을 뛰어 들어오며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애 썼다고 하며 칭찬했다.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해 왔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딸이 같은 말을 했을 때 나는 되물었다. “100점 받은 친구도 있어? 학급 친구들도 다 잘 봤니?” 이제 나는 딸 친구들의 성적까지 걱정하게 된 것일까? 통상적으로 90점은 훌륭한 점수다. 하지만 시험 난이도가 낮아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이 많아지면 90점이라는 점수는 좋은 등급(결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옆자리 친구가 0.1점을 더 받았을 뿐인데 나와 등급이 달라지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가 한국의 고등학교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시험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의 활기와 웃음이 사라진다. 교사로서 체감하기에 요즘의 아이들은 10여 년 전보다 시험 공부를 하는 기간은 더 길어졌고, 암기의 강도는 더 세졌다. 시험을 3~4일 앞두고 수업을 감행하려면 각오가 필요하다. 정수리만 보여주는 아이들(수면시간 부족), 대답 없는 아이들(기운 부족)을 보면 시험 공부 전의 명랑한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드니까.

지난 19일 강원 전역에서 고등학생 25명이 강원진로교육원의 `창의융합, 그게 뭐라고?! 1박2일 고교생 진로독서토론'에 왔다. 학교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이라는 주제로 독서토론을 하기 위함이다. 학생들은 문학(토드스트라써의 `파도'), 사회(목수정의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건축(김경인의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의 관점에서 책을 읽고 모여 저자를 만나고 각 분야를 융합해 비경쟁 독서토론을 했다.

“선생님 모두 대학 진학을 위해 생활기록부 관리를 잘하라고 강조하셨어. 우리는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아.”

“고등학교에 와서 친구와 끊임없이 성적을 비교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에 슬펐어. 공부는 비교에 필요할 뿐인 건가?”

“나는 공부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 하고,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잖아. 학교의 평가 시스템, 평가 결과가 대학 진학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공부의 본래 의미가 왜곡된 것이야. 공부의 의미가 평가에 한정지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워.”

`우리는 왜 공부하는 것일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던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곧은 생각과 맑은 목소리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지만 슬펐고 안타까웠다. 어른으로서 미안해졌다. 극도의 경쟁과 비교의 시스템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미래사회에는 협력하는 인재가 필요하니 생활기록부에 협력의 경험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사의 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으라는 어른의 말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는 시험과 대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본연의 욕망이라는 것을. 이기기 위해 달려가는 것보다 다양한 삶을 서로 응원하며 달리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언제쯤 아이들에게 고민 없이 말할 수 있을까? 17세는 대학에 가기 위해, 취업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17세는 17세를 위해 존재할 뿐이야. 그러니 너는 경쟁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