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으로 공부합시다]신문은 시대의 보물이다
2019-08-06

과거 속 사람들의 관심사·생활상
그 시절 사회현상 면밀하게 담아내


우연한 기회에 옛 신문 기사를 동료 해설사들과 함께 해독한 적이 있다. 조선중앙일보 제2619호(1936년 6월 22일 토요일)에 실린 엄홍섭 평론가의 “김유정씨 작 『떡”에 대한 창작평 기사였다. 한자 혼용에 세로쓰기 신문의 복사본에서 뭉개져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글자, 특히 한자의 정확한 표기를 해독해 내는 작업이었다. 시커멓게 떡이 된 부분을 확대해 글자의 흔적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는데 완전히 뭉개져 해독 불능인 몇 단어를 제외하곤 거의 다 풀어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덤으로 당시 신문 기사 한 면을 다 훑어봤는데 매우 흥미로웠다.「간편히 장치되는 라디오, 일원오십전짜리 라디오방송국, 하기위생강좌 말라리아 그 치료법은?, 서호진등대의 하루, 법률고문, 명암의 십자로(과거에 부정한 아내 이혼할까요?), 라디오 방송프로그램」등 신문 한 면을 장식한 기사의 헤드라인들이다. `고기에 날개가 달렸어!'라는 설명이 붙은 갓난아기가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펼치고 있는 코믹한 사진도 있었다. `제4회 전조선남녀중등학생 주산경기대회(보성전문학생회 주최)' 광고도 눈에 띄었다. 옛 신문 한 면을 통해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시대 사람들의 관심사와 생활상을 들여다본 것은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지난해 화천의 어느 지인 집에 갔다가 하룻밤을 묵게 됐다. 처음부터 자고 올 계획은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일행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예정된 숙박이 아니었으므로 미안한 마음으로 지인이 내어준 방에 들었다가 마치 타임캡슐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도배가 벗겨진 한쪽 벽면에 초벌지로 바른 1980년대의 빛바랜 신문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4컷짜리 시사만화, 통금 해제 직후의 문제점 진단, 갓 출범한 프로야구 소식 등의 기사와 지금은 절품된 상품 광고들로 방 안의 시간은 1980년대에 멈춰 있었다.

위의 두 경험은 신문이 그 시대의 사회현상들을 면밀하게 포착하고 축약해 거울처럼 사실 그대로 담아내는 미디어 수단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이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사회현상과 계층 간 심리적 갈등을 일반 서민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해학적으로 풀어냈기에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은 신문사에서 종합편성채널 또는 인터넷방송을 운영하는 등 이른바 종합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신문은 시대의 거울, 사회현상의 축소판이기에 어떤 매체들보다 독자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들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나는 신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읽어낼 것이다. 잉크 냄새 풍기는 지면을 한 면씩 천천히 넘기며 시야를 넓혀 나갈 것이다. 지난 세월이 궁금할 때면 신문에서 그 시절 그때를 복원해 낼 것이다.

옛것이 그리울 때 박물관을 찾듯 그 시절의 신문을 뒤적이며 보물을 캐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