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수 고성 대진초교장
아날로그 감성·지속 가능 장점
교육·인문학적 힘 가장 센 매체
고교 2학년이던 1983년, 한 단체의 지원으로 강원일보사를 찾은 적이 있다. 도청 앞 비탈진 언덕에 자리 잡은 사옥을 들어선 순간,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와 강렬한 인쇄 잉크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좁은 통로와 미로처럼 얽힌 공간들 속에 바쁘게 움직이는 기자와 직원들의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30여년이 흐른 후 강원일보사에서 진행하는 일일 기자체험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강원일보사를 다시 방문했다. 지금은 리모델링과 인테리어로 그때의 건물 내부 모습은 사라졌고, 신문 제작 및 인쇄도 컴퓨터나 디지털 미디어가 도입됐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신문을 발행하는 과정은 편리해졌지만, 우리가 잃은 것 중에 가장 심각한 손실은 바로 `감성'이 아닐까 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강한 자극과 각인 효과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걸러지지도 않으며, 누구나 뉴스를 생산해낸다. 우리는 무작위로 또는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뉴스나 정보에 빠져 방황하는 `디지털 미디어 방랑자'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마그네틱 녹음 테이프와 녹음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인공지능(AI)과 드론, 로봇과 같은 소위 4차 산업이 굳어가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라니? 국가 성장 동력으로도 이미 4차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마당에 아날로그는 더욱더 생뚱맞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아날로그 미디어인 종이 신문은 디지털 미디어가 가진 감성을 가지고 있다. 한번에 펼쳐지는 지면은 직관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뉴스나 정보를 한 번에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뉴스는 액정 크기에 갇혀 신문 지면 한 면을 다 읽기 위해서는 그만큼 복잡한 과정과 수고로움을 즐길 수 있어야 가능하다.
교장 자격연수 과정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안경을 낀 학생과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이 낯설었다. 교실은 아주 아날로그한 공간이었다. 사방에 게시된 아이들의 작품은 신문이나 잡지 등을 활용한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레고 블록이나 책, 소파나 스툴 의자, 교실 가운데 놓인 러그 매트와 방석들, 책상위에 놓인 신문이나 각종 잡지들이 전부다. 끊임없이 학생과 교사가 소통하며, 학생들끼리도 소통한다.
우리가 아무리 디지털 스마트 미디어를 활용한 최첨단 수업을 한다고 해도 매체 자체가 중심이 돼 버리는 수업으로 흐른다면 아이들은 감성 없는 수업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종이 신문은 지속 가능한 매체로 교육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나 가장 힘이 세다.